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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사건의 이해를 위해{대법원 2015. 12. 24. 선고 2015도6622 판결}을 피해자인 경찰의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2014년 6월 10일 시간은 새벽 2시 38분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동작경찰서에 신고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서울 동작구 모처에서 택시 승객과 택시 기사가 요금 문제로 시비가 벌어졌으니, 출동해달라는 전화였어요. 아, 이 새벽에 시비 사건은 끝도 없구나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동을 했었죠. 저는 그로부터 17분 후인 02:55분경에 해당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늦었었죠. 아니나 다를까, 택시 승객이신 신고자께서 화가 많이 나신 상태셨습니다. 오자마자 신고자께서 항의를 시작하시더라구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너무 죄송했습니다. 장소를 빨리 찾지 못하여 스스로도 속상한 가운데 도착이 지연된 경위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이 ㅆㅂ!"

 

 …욕설이 들렸어요. 아무리 그래도 택시 기사님도 보시는데 욕설은 좀 아니지 않나요? 저 또한 화가 났습니다.

이건 증말 선 씌게 넘었지!!!!!!!!!! 그래서 신고자를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로 고소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런 쌍욕이 들어간 비속어는 실무에서 모욕죄로 인정이 되는 걸 경찰관인 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모욕죄가 성립할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2심까지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사님께서 판결을 내려주셨습니다.

 

근데 3심인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어요. 왜? 대체 왜? 저거보다 약한 말도 모욕죄 성립한다고 봤는데..?

동네사람 4명과 구청직원 2명 등이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가 듣는 가운데 구청직원에게 피해자를 가리키면서 '저 망할ㄴ 저기 오네' 라고 피해자를 경멸하는 욕설 섞인 표현을 하였다면 피해자를 모욕하였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1990. 9. 25. 선고 90도873 판결)

 

저는 무려 쌍욕을 들었는데요..?

그런데 대법관님들께서는 이렇게 판단을 내리셨더라구요. 

이러한 사실관계와 함께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이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된 경위와 발언의 횟수, 발언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발언을 한 장소와 발언 전후의 정황 등을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살펴보면, 피고인의 위 “아이 ㅆㅂ!”이라는 발언은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지칭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발언자 자신의 불만이나 분노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하여 흔히 쓰는 말로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특정하여 그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을 들어 피고인의 위와 같은 발언이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형법상 모욕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이 말을 풀어쓰면 이렇습니다. "아이 ㅆㅂ" 이 말이 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인 건 맞지만, 우리가 힘들 때, 짜증날 때, 우울할 때 그냥 감정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즉, 모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욕죄가 아니고 2심 법원에게 다시 판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저도 혼잣말로 종종 쓰긴 하는 점에서 인정하긴 합니다만..으음...어떡하죠...정의 구현.....날아갔어요. 

 

 


 

2015년 당시, 이 판례는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었어요. 판례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은 비속어 그 자체에 대해서 모욕이라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는 점입니다. 비속어를 감정 표출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인정한 판례이기 때문에 언뜻 진보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는데요. 이 판례가 나오지 않았다면, 실무 단계에서는 쌍욕이 포함된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 관습적으로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다음에도 흥미로운 판례 이야기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구독, 공감,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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