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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돌아온 판례 속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표현이죠. 바로, '기레기'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2017도17634]의 사건을 피고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7도17643 판결 [모욕] [공2021상,943]

 

 

 

실관계

 

네, 벌써 지금으로부터 5년이 지났네요. 글쎄요, 그날을 기억해보자면... 다음 포털 사이트 헤드 라인에는 현대 자동차의 MDPS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었습니다. "우리에겐 독이 아니라 득이 되는 MDPS"라며 MDPS의 장점에 관한 기사였죠. 쭉쭉 읽어나가는데 이건 MDPS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일반적인 EPS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은 EPS(Electric Power Steering)라는 용어로 통칭됩니다. 다만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이를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사 헤드라인을 저렇게 잡다니. MDPS의 안전성에 관해서 많은 의문의 목소리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미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MDPS의 결함 의심 사고를 보도한 바가 있으니 말입니다.

 

분명히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뒤집고자 현대 자동차에서 돈 주고 기사 뽑았구나 싶었죠. 기레기는 역시 기레기다 싶었어요/ 헤드라인도 자극적으로 써서 조횟수 오지게 빨아먹겠구나, 정작 내용은 MDPS가 아니라, EPS면서 쯧쯧

 

아니나 다를까, 기사 댓글란에는 기자를 욕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죠. 

'풋....그럼 이러면 되겠네...아반테에 들어가는 EPS를 제네시스에 넣어라...됐지? 어디서 이런 기레기가....'

 

'2580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흉기레기 기자야'

 

그래서 저도 시원하게 남겨줬습니다.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모욕죄로 고소됐으니, 경찰서로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죠. 그리고 모욕죄 혐의로 재판으로 넘어갔죠.

 

저는 '기레기'라는 댓글을 쓴 사실은 있지만, 현대 자동차 그룹의 홍보성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긴 댓글이 당시 저처럼 기사를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었어요. 이게 어떻게 모욕죄가 될 수 있나요? 절대 모욕을 할 의도가 없었다고, 모욕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제1심은 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법원은 기레기란 표현이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기 때문에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벌금 30만 원을 선고받았죠. 

 

당연히 저는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 역시도 기레기라는 표현에 대한 모욕죄 성립을 인정했죠. 결국 대법원 갔습니다. 

 

 

 


 

기레기라는 표현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인터넷 언론 뉴스를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표현이죠. 이 표현이 과연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여 한동안 기레기라는 표현을 삼가하라는 댓글까지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레기'라는 표현 자체는 모욕적인 표현이 맞습니다만, 해당 사건에선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4년 간의 긴긴 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죠.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6도9674 판결 등 참조).

 

피고인이 작성했던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 등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하는 기자 또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하한 용어이므로,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던 원심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을까요?

 

형법 제20조(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바로 형법 제20조로 인해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비판이 담긴 의견들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의 해당 기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의 MDPS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MDPS를 옹호하는 제목으로 게시되었던 한편, 일반적인 EPS의 장점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기사를 게시하기 전 '시사매거진 02580' 프로그램을 통해 MDPS의 부정적인 내용이 보도되어 기사를 읽은 상당수의 독자들은 방송 내용 등을 근거로 MDPS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듯한 기사의 내용과 기자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게시했었죠.  

 

둘째, 다른 댓글들을 미루어 비춰본다면 피고인의 '기레기'라는 표현이 담긴 댓글은 피해자인 기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점.  

 

셋째, 기레기는 기사나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며, 다른 댓글과도 비교해 볼 때 이 사건 댓글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해당 사건에서 기레기라는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판단하여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

판결 원문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어떤 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도 그 글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그 사실관계나 이를 둘러싼 문제에 관한 자신의 판단과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 하는 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자신의 판단과 의견이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 글이 동조하는 다른 의견들과 연속적ㆍ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정에 기초하여 관련 사안에 대한 자신의 판단 내지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 하는 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 표현도 주로 피해자의 행위에 대한 것으로서 지나치게 악의적이지 않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

출처: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7도17643 판결 [모욕] [공2021상,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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